유성매직 그리고 청테이프 -이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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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어느 모임 뒤풀이 자리에서 학생들과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나온 대화의 대부분은 오직 하나, 스마트폰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평소 얼리 어답터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름 시대에 뒤처지지는 않는다고 자부하면서 살아왔었는데, 이런, 이젠 정말 구닥다리 세대가 되어버렸구나. 속으론 그렇게 찔끔, 했으면서도 겉으론 계속 어디선가 주워들은 `4G 스마트폰' 운운하면서 아는 체를 하려고 노력했다. 노력하면서도 한편, 그들의 놀랄 만한 정보 접근력과 속도에 감탄했고, 그것이 못내 부럽기도 했다. 이것이 우리 세대와는 다른 그들만의 활력이고, 그들만의 세대의식이자 특권이겠구나, 인정하기 싫었지만 그렇게 인정하기도 했었다.


그런 인정이 다시 뒤바뀐 건, 지난 달 서울 어느 사립대 재학생인 김예슬 학생이 대자보를 통해 밝힌 `나는 오늘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라는 공개 자퇴서를 읽게 된 이후부터였다. 내가 유심히 본 건 그녀의 자퇴서 내용도 내용이었지만, 그녀의 글씨, 그 자체였다. 그녀는 왜 많고 많은 형식 중에서도 굳이 `대자보'란 구세대의 대화창을 사용했을까?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이나, 트위터, 싸이의 다이어리도 아닌, 손도 많이 가고 시간도 오래 걸리는 대자보를 이용했을까? 그것이 나는 궁금했고, 며칠 동안 계속 그 의문을 머릿속에 품고 돌아다녔다. 그리고 희미하게나마 그 이유를 내멋대로, 대강이나마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까 이런 것이었다. 만약 그녀가 자신의 `공개 자퇴서'를 학교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올렸다고 치자. 그러면 그 다음엔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되었을까? 아마도 대자보보단 더 많은 사람이, 실시간으로 그녀의 글을 보게 되었을 것이다. 그 뒤에 일어날 일들은 사실 뻔하다. 그녀를 옹호하는 댓글들과 그녀를 비난하는 댓글들, 양비론의 댓글들과, 농담의 댓글들이 속속 그 아래에 달렸을 것이다. 그러다가 댓글과 댓글끼리 서로 싸우는 일도 일어났을 것이며, 홈페이지 관리자는 이 글을 삭제해야 할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런 상황을 본 김예슬 학생 또한 자신의 뜻과는 무관하게 진행되는 논란들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입장을 수정하고 싶은 생각들이 슬몃슬몃 들게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건 비단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의 문제만은 아니고, 트위터나 싸이에서도 똑같이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아니 어쩌면 그래서, 그녀는 `대자보'를 이용했다. 그것은 돌아갈 길을 만들지 않겠다는 의미도 있지만, 말이 아닌 어떤 행동의 의미가 더 컸다. 쉽게 수정되거나 삭제될 수 없는 행동.


지금도 인터넷에 들어가보면 수많은 이십대 청춘들이 저마다의 정치적 견해를 견지하고,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기사들과 정치적 사안들에 대해서 각자의 의견들을 보란듯이 제시하고 있다. 그 의견들만 보면 과연 누가 그들을 정치적으로 무관한, 자신의 스펙 쌓기에만 열중한 세대라고 말할 수 있을지, 궁금하기까지 하다. 한데, 문제는 딱 거기까지만이다. 치열하게 담론은 오고 가지만, 언제나 담론은 담론 수준에서만 머물고 만다. 누군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면, 행동으로, 정당한 투쟁으로 실천하는 것이 아닌, 단순한 비아냥거림으로, 또 다른 담론으로만 맞설 뿐이다. 그것은 권력을 가진 자들에겐 참으로 고마운 현상이 아닐 수 없는데, 그저 귀만 닫고 시간이 흐르길 기다리기만 하면, 모든 것을 다 자신들의 뜻대로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대자보를 작성한 김예슬 학생은 자신의 글 말미에 `행동한 대로 살아내겠다는 용기를 내련다'라고 썼다. 그녀는 그 문장을 유성매직으로 썼다. 그리고 그것을 청테이프에 의지해 게시판에 붙였다. 정보와 속도는 지식을 쌓게 할 수 있을지는 모르나, 지성까지는 담보하진 못한다. 어쩌면 우리 시대의 인터넷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 스스로 지성을 포기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더 많은 자유를 주는 것 같지만, 더 무서운 포기가 거기 숨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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