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왕자님과 새색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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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비록
당신이 어릴적 꿈꾸고 그리던
황금투구를 쓰고
백마타고 수많은 무리를 휘저으며
비단길로 깔린 길을
달리는 그런 백마탄 왕자는 아니지만..

백마 대신 고물자전거
황금투구 대신 농약모자
비단길 대신 시골길을
휘젓고 다니지만

내눈엔 여전히

그대 마실나가는 길만큼은
이 두다리로 모셔다 드리리다


하이고마
그라므예 여전히 왕자지예 것도 메이져 왕자!




왠지, 왕자하니까 생각나는 시가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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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순 넘어 한글 배운 수문댁
몇 날 지나자 도로 표지판쯤은 제법 읽었는데


자응 자응 했던 것을
장흥 장흥 읽게 되고
과냥 과냥 했던 것을
광양 광양 하게 되고
광주 광주 서울 서울
다 읽게 됐는데


새로 읽게 된 말이랑 이제껏 썼던 말이랑
통 달라서
말 따로 생각 따로 머릿속이 짜글짜글 했는데


자식 놈 전화 받을 때도 
옴마 옴마 그래부렀냐? 하다가도
부렀다와 버렸다 사이에서
가새와 가위 사이에서 
혀와 쎄가 엉켜서 말이 굳곤 하였는데


어느 날 변소 벽에 써진 말
수문 양반 왕자지
그 말 하나는 옳게 들어왔는데


그 낙서를 본 수문댁
입이 눈꼬리로 오르며
그람 그람 우리 수문 양반
왕자거튼 사람이었제
왕자거튼 사람이었제



                                 <수문 양반 왕자지>  - 이대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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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여, 무엇이 두려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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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은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 진다. 예술은 장점만을 지닌 인간들에 의한 것이 아니다.
  풍경화를 그리는 성모마리아나 단지를 굽는 배트맨, 이상하지 않은가!
  결점 없는 존재는 예술을 할 필요가 없다.


- 예술을 창조하는 것과 감상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예술창조는 하고자 하는 것과 해낸 것 간의 피할 수 없는 간극을 그대로 보여줘
  심기를 불편케 하는 과정에 다름 아니다.
  창작자를 제외한 감상자에겐 결과물, 예술 작품이 중요할 뿐.

- 예술작업을 해 나가는 사람들은 계속하는 법을 배운 자들,
  좀 더 정확히 말해 중지하지 않는 법을 배운 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 자신의 작품이 실패할 것이라는 두려움은 예술작업 주기에서 반복되는,
  정상적이며 건강한 일반 현상이다. 이땐, 전체 주기를 마치고 다음의 새로운 구상을 시작하고
  전개해야할 지점으로 되돌아 왔음을 나타낸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날 때, 예술적 죽음이 찾아오는 것이다.

- 포기는 중단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중단은 늘 하는 것이지만, 포기는 그것으로서 마지막이다.
  포기한다는 것은 다시 시작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시작하고 또 시작해야 하는 것이 예술인 것을.

- 최고의 기술을 발휘하여 가장 좋아하는 재료와 아이디어를 실현해 나가는 예술은
  고귀한 소명이지만 비열하고도 혼란스러운 두려움이 뒤따른다.

- 예술창조는 불확실하며 예측할 수 없는 과정으로, 불확실성은 예술 창조의 욕구의 본질을 이루고
  불가피하며 절대 서로 떨어질 수 없는 동반자인 것이다.
  이러한 불확실성에 대한 인내가 성공의 필수조건이다.

- 예술창조에 관한 두려움은 크게 두가지로 나뉜다.
  <자신에 대한 두려움>, <타인들이 자신을 어떻게 평가할까에 대한 두려움>.
  전자는 최상의 상태에서 작업하는 것을 막고,
  후자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작업을 하지 못하도록 한다.

- 예술가인 척 가식을 부릴 수는 있어도 예술을 창조하는 척을 할 수는 없다.

- 두 그룹의 학급, 양으로만 평가하는 집단, 질로만 평가하는 집단.
  가장 뛰어난 예술품들은 양으로 평가한 집단에서 나왔다.

- 훌륭한 작품을 완벽한 작품과 동일한 것으로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 작품 창작으로부터 남들에게 보이기까지의 일정한 격리기간,
  즉, 순수한 시간적 공백을 두는 것이 때때로 필요하다.
  창작자 자신이 자신의 작품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
  그렇게 되면 남들의 평가의 순간이 와도 그들의 반응이 어떻든 그다지 큰 위협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 만일 어느 때 어떤 한 작품에 대한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면
  바로 그 순간이 창작해야 할 작품이다. 다른 것을 하려고 하다가는 그 순간을 놓쳐버리고 만다.
  정말이지 우리 자신의 작품은 시간 및 장소와 너무도 밀접한 영향이 있다.

- 대학의 역할은 언제나 교육에 있고, 이는 훈련 시키는 것으로부터 작지만 의미있는 한 걸음을 더 내딛는 것이다.
  훈련이 직업을 위한 준비라면, 교육은 인생을 살아가도록 준비시켜 준다.

- 평론가에게 예술은 그저 하나의 명사에 불과하지만,
  예술가에게 예술이란 하나의 동사이다.

- 다른 사람들의 작품 창작을 통해 연대의식에서 나오는 용기를 얻는다.
  두려움을 함께 나눌수록 연대감은 더욱 깊어져 마음의 문이 열리게 되는데,
  이것은 예술을 과정으로, 예술가를 영혼의 동지로 여김으로써 가능해 진다.

- 예술은 예술가들이 도전을 이겨내지 못해서가 아니라 극복할 도전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실패에 이르게 된다.

- 우리는 규칙을 누구보다 성실히 따른 예술가를 기억하지 않는다.
  우리의 기억속에 남는 예술가는 <규칙>에 따라 생겨날 수밖에 없는 예술을 창조한 사람들이다.

- 아이디어를 다루는 예술이 기술을 다루는 예술보다 더 흥미로운 법이다.

- 예술과 공예의 차이는 어떤 도구를 들고 있는가가 아니라, 어떤 정신적 지침을 따르는가이다.
  공예가에게는 공예기술 그 자체가 존재 이유지만,
  예술가에게 손재주는 자신의 비젼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 과학자는 공중에 던져진 돌의 탄도를 설명할 방정식에 대해 질문하는 동안,
  예술가는 돌을 던지는 느낌이 어떤지에 대해 묻는다.

- 예술가들마다 특정한 진리를 발견하는 순간이 따로 있으며 그 순간을 놓치면 그 진리는 영원히 찾지 못한다.
  다른 그 누구도 '햄릿'을 쓸 수 없는 것이다. 
  이는 세계의 의미가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만드어지는 것이라는 점을 증명해 준다.
  이 소설이 씌여졌을 때 세계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달라졌으며
  셰익스피어가 할 수 있었던 그 이상으로 되돌아 갈 수는 없다.

 - 흥미로운 대답을 찾는 사람들은 흥미로운 물음을 제기하는 사람들.



                                                                                           <예술가여, 무엇이 두려운가!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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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껏 게으른것이 아니라 두려웠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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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연속극 -고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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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팔순의 어머니 아버지 두 분만 사시는 고향집에 내려가니
그동안 그럭저럭 나오던 TV가 칙칙거리며 나오지 않는다.
늙은 어머니는 텔레비젼 앞에 앉아 있고
늙은 아버지는 대문간을 지키고 젊은 나는 세워놓은 안테나를
동서남북 돌려보다 신통치 않아 아예 통째로 뽑아들고
감나무 옆, 뒤란 시누대밭, 장독대 뒤곁으로 왔다갔다한다.
 내가 대문간의 늙은 아버지한테 잘 나와요? 물으면
늙은 아버지는 대문 앞에 서 있다가 할멈, 잘나와? 묻고
늙은 어머니가 아까보담 더 안 나와요, 하면 늙은 아버지가
다시 말을 받아 아까보담 더 안나온다, 하고
젊은 나한테 외친다.
 나는 또 자리를 옮겨 잘 나와요? 묻고 늙은 아버지는 늙은 어머니에게
똑같이 재우쳐 묻고 늙은 어머니는 늙은 아버지에게 대답하고
늙은 아버지는 젊은 나에게 대답한다.
 젊은 나는 반나절 팥죽땀을 쏟으며 그 기다란 안테나를 들고 뒤뚱거린다.
세 사람이 연신 묻고 묻고, 대답하고 대답한다.
늙은 아버지가 대문간을 지키고 있기가 따분한지 담배 한 개피를 피워 물며
쭈그리고 앉아 대강 나오면 그냥 보제, 하던 차 굴뚝 옆에 자리를 잡아
안테나를 돌리니 방안에서 아이구야, 겁나게 잘 나온다, 늙은 어머니 목소리가
늙은 아버지를 통하지 않더라도 내 귀까지 선명하다. 돌아가지 않게
단단히 비끄러맨다. 방안에 들어와 채널을 돌려보니 7번, 9번, 11번 다 화면이 선명하다.
 저녁 늦게 서울에 올라와 마누라, 자식새끼랑 주말연속극을 본다.
늙은 아버지도 늙은 어머니도 시골집에서 주말연속극을 본다.
참 오랜만에 늙은 아버지, 늙은 어머니, 젊은 자식놈이 안테나가 맞아 저무는 주말 저녁,
함께 연속극을 본다. 가슴 뭉클하고 선명한 주말 연속극.



                                                                             <주말연속극> - 고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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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고늙은젊음.
늙은과늙은사이에서 젊음은 태어났고
그 젊음은 늙음과늙음의 안테나를 세워
돌아가지않게 비끄러맨다.
무언가를 거쳐 누군가를 거쳐 가야만 했던
젊음의 목소리가
어딘가를 거쳐 어느때를 거쳐 가야만 했던
늙음의 목소리가
어느 순간 건네받지 않아도 통한다.
7, 9, 11 모두 선명하다.
나른한 주말 오후,
젊음을 있게 해준 늙음을 위해 안테나를 들고 뒤뚱거리며
주파수를 찾아다니는
그런 마음



선명하고 따뜻하고 평온한
주말 연속극.


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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